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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인문학

영화, 왕과사는 남자의 엄흥도와 같은 선택을 한 나는 김시습이다

by strong22 2026. 2. 21.

 

권력 대신 양심을 선택한 조선 지식인 김시습의 삶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나는 김시습이다의 표지 이미지이다
권력 대신 양심을 선택한 조선 지식인 김시습의 삶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나는 김시습이다의 표지 이미지이다

1. 단종의 시대를 함께 살았던 사람들, 김시습과 엄흥도는 누구인가?

조선 전기, 어린 왕이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폐위되고 죽임을 당한 사건은 단순한 정치 변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윤리 기준을 시험한 사건이었다.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바로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이다. 단종은 어린 나이에 즉위했으나,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된 뒤 1457년 사사되었다. 이 사건은 동시대를 살던 지식인과 신료들에게 하나의 거대한 질문을 던졌다. 권력이 도덕을 배반할 때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단종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대표적 인물이 바로 김시습이다. 1435년에 태어난 그는 단종보다 네 살 많았다.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고, 학문적 재능을 인정받아 조정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인물이었다. 충분히 출세할 수 있었고, 실제로 세조 정권 아래에서도 능력을 펼칠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그러나 단종의 폐위와 죽음은 그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는 과거 시험을 단념하고 벼슬길을 스스로 끊어 버린다. 그리고 승려가 되어 전국을 떠돌며 방외인의 삶을 택한다. 이 결단은 단순한 은둔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치 현실에 대한 분명한 윤리적 판단이었고 자신의 삶을 건 선택이었다. 한편 같은 시대를 살았던 또 다른 인물 엄흥도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단종에게 응답했다. 그는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처형되었으며 특히 단종이 사사된 뒤 위험을 무릅쓰고 시신을 수습한 충신으로 전해진다. 왕이 폐위된 상황에서 시신을 거두는 행위는 단순한 장례 절차가 아니라 정치적 선언에 가까웠다. 김시습과 엄흥도는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다른 길을 걸었다. 엄흥도는 행동으로 저항했고 김시습은 체제 밖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둘의 출발점은 같았다. 단종의 죽음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이 두 인물을 떠올리며 절의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절의는 반드시 칼을 들고 싸우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는 권력에서 물러나는 것도 침묵 속에서 신념을 지키는 것도 또 다른 형태의 절의일 수 있다. 단종의 죽음은 두 사람을 윤리적 공간에서 만나게 했다. 그 만남은 조선 지식인의 정신사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2. 출세 대신 양심을 택한 김시습의 선택이다

김시습은 분명히 성공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고 학문적 자질과 정치적 감각도 갖추고 있었다. 당시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조정에 나아가 관료로 활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진로였다. 그러나 그는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단종의 폐위 이후 세조 정권 아래에서 벼슬하는 것은 곧 새로운 권력을 인정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김시습은 그 지점에서 멈추어 섰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나는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그의 선택은 감정적 분노의 결과라기보다 철저히 숙고된 윤리적 판단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그는 성공이라는 외적 지표 대신 자기 신념이라는 내적 기준을 택했다. 그 선택은 편안함을 보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난과 고독 사회적 주변화를 감수해야 하는 길이었다. 김시습은 승려가 되어 전국을 유랑했고 사상적으로도 유교를 넘어 불교와 도교를 아우르며 사유의 폭을 넓혔다. 그의 대표작인 금오신화는 한국 최초의 한문 소설집으로 평가받는다. 작품 속에는 권력의 허망함과 인간 욕망의 덧없음이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이는 단순한 문학적 상상이 아니라 현실 정치에 대한 깊은 성찰이 반영된 결과로 읽힌다. 나는 여기서 김시습의 선택이 단순한 거부가 아니라 재정의였다고 본다. 그는 성공의 정의를 다시 썼다. 권력과 지위를 얻는 것이 아니라 자기 기준을 지키는 것을 성공으로 삼았다. 이 지점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쉽게 안정과 명성을 선택하는가 그리고 그 선택이 내 신념과 충돌할 때 과연 어디까지 감수할 수 있는가 김시습의 삶은 그 질문을 회피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의 선택은 한 시대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반응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어떤 기준 위에 삶을 세울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기도 했다.

3. 권력 곁에서 살아가는 삶과 거리 두기의 선택, 최신영화인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살펴본다

김시습의 삶을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왕과 사는 남자가 떠오른다. 이 영화는 왕이라는 절대 권력 곁에서 살아가는 인물의 심리와 갈등을 다룬다. 왕과 함께 산다는 것은 곧 권력의 영향력 안에 머무른다는 뜻이다. 그 안에서 인물은 완전한 저항도 완전한 순응도 아닌 애매한 경계 위에 선다. 권력 곁에 머문다는 것은 끊임없는 조율을 의미한다. 때로는 침묵하고 때로는 동조하며 때로는 미묘하게 거리를 둔다. 영화는 그 미세한 긴장과 균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김시습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는 권력의 내부도 주변도 아닌 외부를 택했다. 아예 거리를 두어 버린 것이다. 권력 곁에서 살아가며 균형을 잡는 대신 권력과 단절함으로써 사유의 자유를 확보했다. 두 방식 모두 쉽지 않다. 권력 곁에 남는 선택은 현실적 생존을 보장할 수 있지만 끊임없는 자기 검열을 요구한다. 반면 권력에서 물러나는 선택은 고립을 감수해야 하지만 정신적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다. 나는 이 대비를 통해 선택이라는 행위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선택은 단순히 길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그 이후 감당해야 할 결과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김시습은 외로움과 가난을 감수했고 영화 속 인물은 불안과 긴장을 감수했다. 중요한 것은 각자가 스스로 감당 가능한 삶을 택했다는 점이다. 김시습의 선택은 타협하지 않는 거리 두기였고 영화 속 인물의 선택은 권력 곁에서 균형을 모색하는 생존 전략이었다. 이 대비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권력과 성공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단순히 유리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기준과 일치하는 쪽을 선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4. 의과대학 수시전형에서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 윤리적 선택을 증명하는 독서

나는 이 이야기가 단순한 역사 교양을 넘어 오늘의 교육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의과대학 수시전형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이 책은 매우 의미 있는 독서가 될 수 있다. 의과대학은 높은 학업 역량뿐 아니라 강한 윤리 의식과 책임감을 요구하는 분야다.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며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놓인다. 치료 방법을 결정할 때 환자의 이익과 가족의 요구가 충돌할 수 있고 병원의 경영 논리와 의료 윤리가 갈등할 수도 있다. 그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기준이다. 김시습의 선택은 바로 그 기준을 세우는 문제를 보여준다. 그는 출세라는 안정적 경로를 버리고 자신의 양심에 부합하는 길을 택했다. 이는 이상주의적 선택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자기 책임을 끝까지 지는 태도였다. 엄흥도의 행동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함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실천으로 옮겼다. 의과대학 수시전형에서는 지원자의 가치관과 성찰 능력을 중요하게 본다. 이 책을 통해 단종의 죽음 앞에서 각기 다른 선택을 한 인물들을 비교 분석하고 그 선택이 지닌 윤리적 함의를 의료 현장의 의사결정 문제와 연결한다면 매우 설득력 있는 탐구 주제가 된다. 단순히 충신을 존경한다는 감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구조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평가하며 오늘날 전문직 윤리와 연결하는 사고 과정이 중요하다. 김시습의 선택은 행동하지 않음이라는 방식으로 드러났지만 그것 역시 적극적인 윤리적 태도였다. 의사 역시 때로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선택을 해야 하고 때로는 과잉 치료를 피하기 위해 멈추는 선택을 해야 한다. 이처럼 선택의 기준을 세우는 훈련은 단순한 입시 준비를 넘어 전문직으로 성장하기 위한 사유의 토대가 된다. 나는 이 책이 학생들에게 묻는 질문이 의과대학이 묻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단종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김시습은 권력의 중심으로 가지 않았다. 대신 역사와 거리를 두고 서서 자신의 방식으로 시대를 기록했다. 그의 선택은 개인의 출세를 넘어 시대에 대한 응답이었다. 엄흥도는 행동으로 단종의 존엄을 지켰고 김시습은 사유로 그 정신을 지켰다. 서로 다른 선택이었지만 그 본질은 같았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기준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결단이었다. 오늘을 사는 우리 역시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 앞에 선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국 우리의 삶을 규정한다. 김시습의 선택은 시대를 넘어 반복되는 질문을 남긴다. 성공을 선택할 것인가 양심을 선택할 것인가 타협을 선택할 것인가 고독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그의 삶을 통해 깨닫는다. 진정한 선택은 이익의 계산이 아니라 기준의 문제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기준은 외부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세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