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배운 이해와 책임의 무게
도입: 사소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인간 이해의 여정
우리가 책을 선택하게 되는 계기는 늘 사소한 곳에서 시작되곤 합니다. 하이타니 겐지로의 저서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역시 제게는 제목과 표지가 주는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습니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라는, 어쩌면 투박할 정도로 솔직한 고백을 담은 제목과, 신발 끈이 풀린 채 멍하니 서 있는 아이의 모습이 담긴 표지는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아이는 누구일까, 그리고 왜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말하게 되었을까."
책을 읽기 전부터 생긴 이 궁금증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깊어졌고, 단순한 감동을 넘어 '교실'이라는 공간이 가진 본질적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책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결코 미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갈등과 문제, 그리고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기행(奇行)들이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 소용돌이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완벽한 성자(聖者)로서의 선생님'이 아니라, 아이들을 이해하려 처절하게 애쓰는 한 어른의 진솔한 모습입니다. 이 점이 이 책을 단순한 교육 에세이가 아닌, 인간 이해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깊은 철학서로 만들어 줍니다.
1. 두 명의 선생님, 서로 다른 방식의 교육관과 성장
이야기의 중심에는 두 명의 대조적인 선생님이 등장합니다. 오랜 시간 교직에 몸담으며 삶의 지혜를 터득한 아다치 선생님과, 대학을 갓 졸업하고 열정만큼이나 두려움도 큰 신임 교사 고다니 선생님입니다.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서 아이들을 마주하지만, 그들을 대하는 방식과 철학은 확연히 다릅니다.
고다니 선생님: 진심과 눈물로 빚어낸 공감의 교육 신임 교사인 고다니 선생님은 처음에는 전형적인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합니다. 사고 없이 학급을 운영하고, 아이들이 규칙을 잘 지키게 하려 노력하지만 현실은 가혹합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가정환경, 성격, 그리고 말하지 못한 사연을 품고 있으며, 이는 종종 통제 불가능한 행동으로 표출됩니다. 이 과정에서 고다니 선생님은 자주 좌절하고 남몰래 눈물을 흘립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가치는 여기서 빛납니다. 그는 자신의 무능함을 탓할지언정 아이들을 탓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작은 몸짓에 귀를 기울이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그의 여린 마음은 결국 아이들의 굳게 닫힌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됩니다.
아다치 선생님: 개성과 본질을 꿰뚫는 통찰의 교육 반면 아다치 선생님은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입체적입니다. 그는 미술 수업에서 교과서에 실린 정형화된 그림을 똑같이 그리게 하는 대신, '사실'과 '느낀 점'을 구분하고 때로는 그것을 창의적으로 섞어 쓰는 법을 가르칩니다. 이는 단순히 기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 각자가 가진 고유한 시선과 감정을 존중하는 방식입니다. 그는 정답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너만의 답'을 찾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조력자입니다. 교사가 지식의 전달자를 넘어 삶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동반자여야 함을 아다치 선생님은 온몸으로 증명합니다.
2. 문제 행동이라는 외피 속에 숨겨진 아이들의 진실
고다니 선생님의 반에는 일반적인 교육 시스템에서 '부적응자'로 분류되기 쉬운 미나코와 데쓰코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이 책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자, 독자들에게 가장 큰 울림을 주는 대목입니다.
미나코: 존재 자체로 가르침이 된 아이 지적 장애를 가진 미나코는 수업 시간을 방해하거나 다른 아이들의 급식을 가로채는 등 돌발 행동을 일삼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교실의 질서를 해치는 '문제아'입니다. 그러나 고다니 선생님은 미나코를 격리하거나 배제하는 대신 '미나코 당번'이라는 제도를 도입합니다. 아이들이 돌아가며 미나코를 돌보게 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귀찮아하던 아이들도 미나코와 살을 맞대며 보살피는 과정에서 타인에 대한 책임감과 설명하기 어려운 유대감을 배웁니다. 미나코가 특수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을 때 학급 전체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누군가의 빈자리가 느껴질 만큼 그가 이미 교실이라는 공동체의 소중한 일원이었음을 방증합니다.
데쓰코: 쓰레기 속에서 피어난 순수한 지성 쓰레기 처리장에 살며 버려진 파리나 곤충을 키우던 데쓰코는 자신의 비루한 환경을 숨기려 날을 세웁니다. 하지만 고다니 선생님은 데쓰코의 환경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신, 아이가 가진 독특한 관심사와 지식을 존중하며 함께 공부합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아이의 기괴한 행동들 뒤에는 가난과 소외라는 사회적 상처가 있었음을,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전문적인 상담 기법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수용'임을 책은 말해줍니다.
3. 교실의 담장을 넘어 사회적 책임으로 확장되는 연대
이야기의 후반부로 갈수록 교실 내의 에피소드는 사회적 담론으로 확장됩니다. 쓰레기 처리장 이전 문제로 인해 데쓰코를 포함한 가난한 아이들이 정든 학교를 떠나야 할 위기에 처하자, 고다니 선생님과 아다치 선생님은 교실 밖으로 나갑니다.
이들은 아이들의 주거권과 교육권을 지키기 위해 반대 서명 운동을 벌이고, 때로는 동맹 휴학이나 단식 투쟁 같은 극단적인 선택까지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는 단순히 '내 학생'을 챙기는 수준을 넘어, 사회적 약자를 향한 공동체의 책임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질서를 순응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부당한 현실 앞에서 누군가를 대신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임을 두 선생님은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교실은 작은 사회이며, 교육은 그 사회의 내일을 결정하는 축소판입니다. 아이들이 선생님의 치열한 투쟁을 보며 느꼈을 감정들은 그들이 훗날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을 것입니다.
4. 좋아요라는 고백에 담긴 신뢰의 무게
책의 제목인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는 단순한 호감이나 애정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을 이해하려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어른을 향한 아이들의 '전폭적인 신뢰'의 고백입니다. 아이들은 지식이 해박한 선생님이나 실수를 하지 않는 완벽한 선생님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못난 모습까지도 포용해 주고, 함께 고민하며 울어줄 수 있는 '진짜 어른'을 갈망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 역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누군가의 삶을 지켜봐 주고 진심으로 응원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불편한 진실 앞에 함께 서 있을 용기가 있는가?" 이 책은 비단 교단에 서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를 맞이해야 하는 이 시대의 모든 어른이 읽어야 할 지침서와 같습니다.
맺음말: 의대 수시 및 보건계열 학생들에게 이 책을 권하는 이유
이 책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는 의학이나 보건 계열을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도서입니다. 현대 의학은 기술적 완성도를 넘어 '환자 중심의 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질병이 아닌 '사람'을 보는 통찰력입니다. 의사는 환자의 증상(Symptom)만을 치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고다니 선생님이 미나코와 데쓰코의 '문제 행동' 뒤에 숨겨진 배경을 탐구했듯, 의사 역시 환자가 처한 사회경제적 환경과 심리적 상태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 책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는 반드시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인간 이해의 기본 원칙을 가르쳐줍니다.
둘째,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과 직업윤리입니다. 쓰레기 처리장 아이들을 위해 거리로 나선 선생님들의 모습은, 의료인이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감과 궤를 같이합니다. 질병은 사회적 소외 계층에게 더욱 가혹하게 다가옵니다. 의료인을 꿈꾸는 학생이라면 이 책을 통해 전문가로서의 권위보다 앞서야 할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회적 연대'의 가치를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협력과 소통의 중요성입니다. 학급 아이들이 미나코를 돌보며 함께 성장했듯, 현대 의료 현장은 다학제적 협력(Multidisciplinary Teamwork)이 필수적입니다. 나와 다른 존재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미래의 의료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역량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사람을 다루는 학문'인 의학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 공감 능력, 책임 의식, 그리고 인간 존엄성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여러분이 꿈꾸는 미래의 모습이 단순히 '지식을 가진 전문가'에 머물지 않고,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따뜻한 어른'으로 확장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