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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한스에 관하여

by strong22 2026. 1. 18.

 

수시전형 의과대학 인문도서 수레바퀴 아래서의 실제 독후감 사진이다.
수시전형 의과대학 인문도서 수레바퀴 아래서의 실제 독후감 사진이다.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기대라는 이름의 무게는 어떻게 한 인간을 짓누르는가 수레바퀴 아래서는 재능 있는 한 소년이 실패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작품은 ‘잘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회적 신념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압박하고, 결국 한 인간을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고 굴러가며, 그 아래에 놓인 개인은 선택의 여지없이 눌린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노력과 성취가 미덕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기대가 언제든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1. 이해되지 않던 문장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

『수레바퀴 아래서』를 처음 읽었을 때, 한스 기벤라트의 태도와 선택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는 왜 그렇게 무기력해졌는지, 왜 끝까지 버티지 못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 자신의 학교생활과 주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자, 이 소설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성적, 평가, 비교 속에서 살아가는 현실은 한스가 처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작품은 읽는 시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처음에는 ‘약한 개인의 실패’처럼 보이던 이야기가, 다시 읽을수록 ‘구조가 만들어 낸 필연적인 붕괴’로 보이기 시작한다. 한스는 스스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무너질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이나 욕망을 표현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고, 주변의 기대를 의심하거나 거부할 권리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 과정은 매우 조용하게 진행된다. 한스는 반항하지도 않고, 큰 사고를 치지도 않는다. 대신 조금씩 말수가 줄고,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삶의 방향 감각을 잃어 간다. 바로 이 점이 이 소설을 더욱 현실적으로 만든다. 극적인 폭발이 아니라, 서서히 말라가는 방식의 붕괴는 오늘날 많은 학생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이해되지 않던 문장은 어느 순간 현실의 언어가 되었고, 이 소설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기록처럼 느껴졌다.

 

2. 기대받는 아이, 그러나 자신을 잃어가는 한스

한스 기벤라트는 마을 사람들과 교사들에게 ‘될성부른 아이’로 인식된다. 그는 영리하고 성실하며,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성공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 성공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문제는 이 기대가 한스에게 선택지가 아니라 의무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그는 공부를 잘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아이가 된다.
한스의 삶에는 ‘왜’라는 질문이 없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신학교에 가야 하는지, 왜 이 길을 가야 하는지 묻지 않는다. 아니, 묻지 못한다. 그는 이미 타인의 기대를 자신의 목표로 내면화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한스의 자아는 점점 희미해진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를 생각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이에 대비되는 인물 하일러는 자유로운 사고와 감정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체제에 쉽게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러나 교육 제도는 이런 아이를 품지 못한다. 하일러는 탈락하고, 한스는 남는다. 하지만 남는다는 것은 곧 더 무거운 기대를 짊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대비를 통해 작가는 교육이 얼마나 쉽게 개인의 다양성을 제거하고, 관리 가능한 인간만을 남기는지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3. 성취 뒤에 남은 공허와 붕괴 

한스의 비극은 실패 그 자체가 아니라, 실패를 견딜 수 없는 상태로 길러졌다는 데서 비롯된다. 그는 늘 잘해야 했고, 흔들려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실패는 허용되지 않았고, 좌절은 곧 존재 가치의 상실로 이어졌다. 그렇기에 신학교에서의 부적응과 친구의 퇴학은 그에게 감당할 수 없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한스는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는 순간, 기대를 저버리게 될 것이라 믿는다. 결국 그는 혼자 감당하다가 무너진다. 그의 죽음은 우연처럼 보일 수 있지만, 독자는 그것이 오랜 시간 축적된 압박과 고립의 결과임을 느끼게 된다.
이 장면은 성취 중심 사회가 개인에게 남기는 공허를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결과만 남고 과정은 사라진 사회에서, 실패는 곧 낙오를 의미한다. 한스는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넘어질 수 없는 아이로 길러졌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의 비극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다가온다.

 

4. 수레바퀴의 무게에 대한 깨달음 

그 무엇보다 나는 기대감을 이기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레바퀴의 무게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는 기대감이라고 확신한다. 기대감은 자유를 허락하지 못한다. 늘 일어서야 하고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게 한다. 만족시키고 싶지만 커져가는 그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기에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았을 것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마저 노력해야 하는 것은 수레바퀴에 짓눌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한스의 죽음이 이해가 되는 것은 우리의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틀을 깨고 나간 자유로운 친구 하일러는 행복했을까, 한 번 벗어던진 수레바퀴 밖에서 자유로웠지만 한스가 느꼈을 책임감의 무게도 만만치 않게 있었을 것이다. 심리묘사와 주변환경이 잘 표현되어 있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긴 작품이라고 느꼈다. 한 소년의 비극을 통해 교육과 사회가 개인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묻는 작품이다. 이 책은 노력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지만, 노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삶의 무게가 분명히 존재함을 보여준다.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지만, 그 아래에서 짓눌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바라봐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독서는 단순한 감상을 넘어, 삶과 인간을 이해하는 태도에 대한 깊은 성찰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