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에게 가장 필요한 소양은 단순히 과학적 지식을 넘어,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고 그 서사에 귀를 기울이는 '공감의 태도'입니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국가적 비극 속에서 파괴된 개인의 삶을 통해 인간 존엄의 근본을 묻는 작품으로, 예비 의료인이 갖추어야 할 인문학적 시각과 생명 윤리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1. 역사적 비극을 마주하는 문학의 힘: 프리모 레비에서 한강까지
독후감의 서두는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기록한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저작과 영화 '택시운전사'를 통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됩니다. 작성자는 프리모 레비의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도 그처럼 일제강점기의 잔인함이나 현대사의 비극적 진실을 세계에 알리는 깊이 있는 문학적 기록이 부재하다는 점에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접하며, 우리에게도 이토록 처절하고 아름답게 역사의 상처를 형상화할 수 있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에 큰 자랑스러움과 든든함을 느꼈다고 기술합니다. 이는 단순한 국수주의적 자부심이 아니라, 비극적 사건을 인류 보편의 가치로 승화시킨 문학적 성취에 대한 존중입니다. 의학도가 가져야 할 공동체적 아픔에 대한 직시와 인문학적 소양이 돋보이는 대목으로, 역사적 기록이 한 개인과 사회의 치유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성찰하게 합니다.
2. 관찰자를 넘어선 공감: 죄책감과 시신 수습의 무게
소설 속 주인공인 중학생 동호는 가장 친한 친구 정대가 군인의 총에 맞아 죽는 현장을 목격하고도 혼자 살아남았다는 깊은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작성자는 '행복한 결말'이 없는 이 소설의 구조에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단순히 감상적인 슬픔에 침잠하기보다 작가가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본질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며 읽으려 노력했습니다. 동호가 매일 합동 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에서 태극기로 감싼 관들과 수습되지 못한 채 놓인 시신들을 돌보는 과정은 인간의 존엄성이 철저히 파괴된 현장입니다. 작성자는 이 장면을 통해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져야 할 존중의 가치를 발견합니다. 죽음 이후에도 남겨진 육신을 돌보는 동호의 행위는 질병뿐만 아니라 인간의 영혼과 존엄을 보살펴야 하는 의료인의 미래 소명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3. 인간을 악마로 만드는 권력과 국가라는 이름의 폭력
소설은 시민들이 총을 가졌음에도 동포인 군인들을 차마 쏘지 못했던 인도적 태도와, 반대로 어린아이와 임산부, 노인까지 가차 없이 살상했던 군인의 잔인함을 극명하게 대비시킵니다. 작성자는 "저 높은 분의 명령이었다"는 명분 아래 무엇이 평범한 인간을 악마로 만들었는지에 대해 깊은 의문을 제기합니다. 특히 죽은 정대의 영혼이 자신의 육신이 시신더미 속에서 불태워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초월적 시점은 독자에게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전달합니다. 작성자는 시신이 다 타버린 후 자유를 얻은 정대의 영혼이 이미 죽은 동호를 찾아가는 비극적 서사를 통해,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목소리를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연대의 의지를 표명합니다. 이는 생명 윤리의 최전선에서 국가 폭력이나 반인륜적 행위에 대해 어떤 가치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에 대한 예비 의료인의 윤리적 기초를 보여줍니다.
4. '꽃 핀 쪽으로' 남아있는 자들의 슬픔과 의학적 소명
가장 깊은 울림을 준 제6장 '꽃 핀 쪽으로'는 아들을 잃은 동호 어머니의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아들을 도청에서 데려오지 못한 어머니의 평생에 걸친 죄책감과 그리움은 '꽃 핀 쪽'이라는 아련한 소제목과 대비되어 더욱 큰 비극성을 자아냅니다. 작성자는 동호가 누군가에게는 용감한 열사였을지 몰라도, 어머니에게는 그저 영원히 지켜주고 싶었던 어린 아기였음을 짚어내며 유가족이 겪는 심리적 고통의 깊이를 헤아립니다. 세월이 흘러도 아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작성자는 인간이 자신의 잘못을 쉽게 뉘우치지 않는 존재라는 프리모 레비의 통찰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이는 의학적으로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같은 정신적 외상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그리고 의료인으로서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하게 만듭니다. '소년이 온다'는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극한의 고통을 통해 역설적으로 인간다운 삶의 의미를 일깨워줍니다. 의료인은 환자의 신체적 질병뿐만 아니라, 그 삶을 관통하는 고통의 서사까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책을 통해 얻은 공감과 연대의 마음은 장차 의학의 길에서 마주할 수많은 생명을 대하는 가장 따뜻하고도 단단한 철학적 기반이 될 것입니다. 비극적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을 치유하고 더 존엄한 생명의 가치를 지키는 미래로 나아가는 첫걸음임을 이 독후감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