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사진은 『나는 김시습이다』를 읽고 작성한 학생 독후감 원문을 촬영한 이미지이다. 김시습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단순한 위인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바라보며, 이름·선택·삶의 태도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깊이 있게 사유한 글이 담겨 있다. 작품의 핵심 문장과 감상이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유지되어 있어 이후 확장 서술의 토대가 되는 자료다.
이름을 산다는 것의 무게
1. 프롤로그 : 왜 지금 다시 김시습인가
우리는 매일 수많은 이름 속에 살아갑니다. 누군가의 자녀, 어느 회사의 사원, 혹은 특정 성적표의 주인공으로 정의되곤 합니다. 하지만 그 수식어들을 다 떼어내고 남은 나라는 이름 석 자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나는 김시습이다는 제목부터 강렬한 선언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김시습을 말한다나 매월당 평전 같은 관조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저자는 나는 김시습이다라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의 문장을 통해, 500년 전의 인물을 현재의 시간선 위로 불러세웁니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 속 위인의 일대기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인간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 어떻게 불화했는지, 그리고 그 불화의 끝에서 어떻게 자기 자신을 건져 올렸는지를 치열하게 추적합니다.
이 글에서는 김시습이라는 인물이 가졌던 천재성이라는 굴레, 그리고 단종의 죽음 이후 그가 선택한 방랑이라는 치열한 삶의 양식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이름의 가치를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2. 기대라는 이름의 감옥 : 천재성이라는 축복과 저주
김시습은 조선 전기 최고의 천재라는 수식어를 단 한 번도 놓쳐본 적이 없는 인물입니다. 다섯 살에 이미 중용과 대학을 통달하여 세종대왕 앞에 불려 가 장차 크게 쓰겠다는 약조를 받았던 아이였습니다. 그의 이름 시습 자체가 논어의 첫 구절인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에서 따온 것임을 상기할 때, 그는 태생적으로 학문과 관직, 그리고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는 숙명을 타고났습니다. 어린 시절의 김시습에게 천재성은 생존의 조건이자 정체성이었습니다. 주변의 찬사와 기대는 그를 고취시키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가 걸어가야 할 길을 좁게 한정 짓는 창살 없는 감옥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선택하기도 전에 이미 훌륭한 관료로 선택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김시습이다는 이 지점에서 현대인들의 고통을 건드립니다. 오늘날의 청소년들과 청년들 역시 부모의 기대, 사회적 성공의 잣대, 대학 입시라는 정해진 궤도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채 되어야만 하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시습이 느꼈을 중압감은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피로감과 놀라울 정도로 맞닿아 있습니다.
3. 결단과 고립 : 충절이라는 명분 뒤에 숨겨진 인간적 고뇌
1455년,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난은 김시습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변곡점이었습니다. 촉망받던 유학자로서 탄탄대로를 걷던 그는 서책을 불태우고 스스로 머리를 깎은 채 산으로 들어갑니다. 역사학자들은 이를 생육신의 절개로 평가하며 칭송하지만, 책은 그 이면의 고독한 인간 김시습에 주목합니다. 그가 선택한 방랑은 결코 낭만적인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주류 사회로부터의 자발적 추방이었으며, 굶주림과 냉대,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검열이 동반된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김시습은 결코 강철 같은 의지만을 가진 초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수없이 흔들렸고, 자신이 남긴 글 속에서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자책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흔들리지 않았음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끝내 돌아가지 않았음에 있습니다. 그는 권력에 기생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는 삶 대신, 누더기를 걸치고 전국을 떠돌며 진실을 기록하는 삶을 택했습니다. 이 선택은 단순한 정치적 태도 표명을 넘어, 나는 누구로 기억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온몸을 던진 대답이었습니다.
4. 방랑하는 사상가 : 금오신화와 경계인으로서의 삶
김시습은 경주 금오산에 머물며 한국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를 집필합니다. 이 작품 속 주인공들은 대개 현실 세계에서 좌절하거나, 기이한 존재들과 교유하며 현실의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이는 김시습 자신의 투영이기도 합니다.
경계인의 시각이 주는 통찰, 그는 유교적 가치관 속에 살았지만 불교의 형식을 취했고, 도교적 사유를 즐겼습니다. 어느 한 곳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경계인의 삶은 그에게 독특한 시각을 선물했습니다. 주류 권력 내부에 있었다면 결코 보지 못했을 민초들의 삶, 권력의 덧없음, 그리고 인간 본연의 욕망과 슬픔을 그는 읽어냈습니다. 책에서 언급되듯, 김시습이 나는 김시습이다라고 외친 것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규정한 미친 선비나 실패한 천재라는 프레임을 거부하고, 고통스러운 진실을 응시하는 단독자 김시습으로서 존재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5. 현대적 변주 : 성취 지상주의 시대에 던지는 경종
우리는 현재 성과와 효율이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대학에 갔는지, 연봉이 얼마인지, 어떤 아파트에 사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된다고 믿는 세상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김시습의 삶은 지독히도 비효율적이고 실패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김시습이다는 우리에게 다시 묻습니다. 성취가 당신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가, 아니면 당신의 선택이 당신을 증명하는가? 김시습은 세속적인 성취를 모두 내던짐으로써 오히려 영원한 이름을 얻었습니다. 수양대군 아래서 영화를 누렸던 수많은 공신들의 이름은 역사의 뒤안길에서 욕된 기록으로 남았지만, 스스로 고립을 택한 김시습의 이름은 시대를 초월하여 빛나고 있습니다. 이는 가치 있는 삶이란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을 지탱하는 윤리적 태도에 있음을 시사합니다.
6. 전문직 지망생과 교육적 관점에서의 고찰 : 왜 김시습을 읽어야 하는가
최근 입시, 특히 의과대학을 포함한 전문직 지망 학생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은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성적이 우수한 인재를 넘어, 생명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윤리적 깊이를 가진 인재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교육적으로도 매우 깊은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첫 번째는 생명 윤리와 주체적 선택의 문제입니다. 의사는 기술자가 아닙니다. 생사의 기로에서 가장 고독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직업입니다. 김시습이 정치적 광풍 속에서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내린 결정들은, 우리가 마주하게 될 수많은 윤리적 딜레마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기초를 제공합니다.
두 번째는 환자를 존재로 대하는 공감 능력입니다. 김시습은 엘리트 집단에 속할 수 있었음에도 소외된 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전문직 종사자는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김시습의 방랑과 기록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지식인의 자세를 배우는 것은 인격적 성숙의 핵심입니다.
세 번째는 비판적 사고와 지적 성숙도입니다. 역사적 인물을 단순히 외우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자신의 삶과 연결 짓는 능력은 지적 깊이를 증명하는 척도입니다. 김시습의 천재성이 사회적 책임감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분석하는 것은 사고의 확장을 경험하게 합니다. 글을 마치며 다시 한번 책의 첫 질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나는 김시습이다.
이 문장은 마침표가 아니라 물음표여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내 이름에 책임을 지고 있는가? 라는 질문 말입니다. 김시습은 평생을 바쳐 이 질문에 답했습니다. 그는 때로 비겁해 보일 만큼 비루한 현실을 견뎠고, 때로 광인처럼 세상을 조롱했지만, 단 한순간도 자신의 영혼을 권력에 팔아넘기지 않았습니다. 나는 김시습이다는 우리에게 화려한 성공 비법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대신, 실패하고 흔들리더라도 끝내 자기 자신으로 남는 법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줍니다. 타인의 기대라는 안갯속에서 길을 잃은 모든 이들에게, 500년 전 한 천재가 남긴 고독한 발자국은 명확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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